조선 시대의 과거 시험 문화와 엄택주의 신분 도용 사건

조선 숙종과 정조 시대의 과거 시험은 수많은 응시생과 선접(자리 맡아주는 사람), 사수(글씨 대필), 거역(대리 시험) 등이 뒤섞여 매우 혼란스러운 ‘난장판’이었습니다. 이러한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도망 노비 출신이었던 엄택주는 뛰어난 실력으로 숙종 45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6년 뒤 영조 1년에는 대과(문과)에 17위로 급제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이후 20년 가까이 관직 생활을 하며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으나, 배다른 형제 이주영에 의해 노비 출신임이 발각되었습니다. 과거의 연주창 흉터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어 결국 영조에 의해 과거 합격이 취소되고 이름이 삭제되었으며, 엄택주는 다시 노비 ‘이만강’으로 돌아가 흑산도로 유배되었습니다.


2026-09-18 23:50

https://youtu.be/VQ5kG51vQ5U?si=wCXeEJNqedHYyidg